불황기에 고가의 명품 대신 비교적 저렴한 사치품을 구매하는 소비 심리를 '립스틱 효과'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립스틱이 대표적이었다면 최근에는 향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고급스럽지만 명품 중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스몰럭셔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향수 시장도 2019년 6천억 원에서 2024년 9천억 원대로 30% 성장했습니다. 최근 향수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향수 브랜드 조말론 런던입니다. 평범했던 주부가 부엌에서 향수를 연구해 조말론 런던을 탄생시키고, 유방암 진단을 받고 일을 할 수 없었던 암흑기를 이겨내고 두번째 브랜드 조 러브스를 탄생시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부엌에서 만든 향수 조말론
조말론 런던을 만든 사람은 화려한 이미지로 승부하던 향수시장에서 부엌에서 냄비로 만든 향수로 판도를 바꾼 주부 조말론입니다. 1963년 영국에서 태어난 조의 어린 시절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화가였는데 경제적 능력은 없고 도벽도 있고, 한번 집을 나가면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조는 10살부터 동생과 집안일을 돌봐야 했습니다. 조의 어머니는 유명한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던 마담 루바티 밑에서 일했는데요. 어머니는 루바티에게 뛰어난 실력으로 일찍이 인정을 받습니다. 그 결과 마담 루바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의 엄마에게 스킨케어 제품의 제조 비법을 전수해 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피부관리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 역시 15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서 피부관리사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21살이던 조는 어머니 샵의 지분을 정식으로 나눠 가지면서 공동으로 피부관리실을 운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뇌졸중 이후에 어머니의 성격이 날카롭게 성격이 변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조의 얼굴에 페이셜 크림을 던지면서 참지 못한 조는 독립을 결심하게 됩니다. 25살의 조는 샵에서 일할 때 12명의 단골 고객을 데리고 작은 아파트를 렌트해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 12명을 창립 고객이자 마케팅팀으로 여기고 많은 자문을 구했습니다. 또 조 역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는데요. 그중에서 진저와 너트맥 즉 생강과 육두구를 넣은 샤워 오일이 향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불티나게 찾았고 조은 화장품이 아닌 향수를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의 작은 아파트 부엌에서 플라스틱 병 4개와 작은 냄비 하나로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향을 조합하며 완벽한 향을 찾아 나섰고 이렇게 만든 향수는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 천재 후각 소유자 조말론
이때 부동산 감정사로 일하고 있던 조의 남편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런던의 월튼 스트릿에 좋은 조건의 가게를 구해줍니다. 이렇게 해서 1994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조말론 런던이라는 향수가게를 본격적으로 오픈합니다. 이때부터 조말론는 매일매일 하루에 단 1유로라도 더 벌면 벌었지 정체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업은 급속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조의 향수는 기존 향수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조는 어떤 향수를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갑자기 더 섹시해진다거나 더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향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도구가 아니라 향을 즐기고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원료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래서 향수 이름에 라임, 바질, 만다린, 너트맥, 진저처럼 어떤 원료를 썼는지 넣어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게 요즘은 많이들 이렇게 하는데요. 이 전의 향수 이름을 보면 불어 이탈리어 등으로 써서 향수의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향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또 명품 브랜드는 주로 섹시한 모델을 써서 이미지 광고를 했는데 조는 향 그 자체에 집중하는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게다가 조는 후각이 엄청 발달했다고 합니다. 2017년에 영국의 의학탐지견 센터와 함께 실험을 했는데 조의 후각이 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후각이 일반 사람들보다 천 배 이상 민감한 수준입니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조는 항상 조향 키트를 들고 다니면서 자연에서 맡은 향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 마케팅 천재 조말론
그동안 향수 회사들은 향수를 섞어 쓰면 안 좋다라고 하면서 한 가지 향수만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조말론은 향을 여러 가지로 레이어링 해서 뿌릴 것을 권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향 2~3가지를 조금씩 뿌리면 나만의 향이 만들어진다라고 마케팅을 했고 매출이 급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말론 런던을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합니다. 크림색에 검정 테두리 향수 박스와 맞춰서 매장도 비슷한 톤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조말론은 2008년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또 윌리엄 왕세손은 결혼식 때 아내에게 조말론 향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영국에서 성공한 조말론은 뉴욕으로의 진출을 꿈꾸며 사전에 물밑 작업에 들어갑니다. 먼저 뉴욕에 진출하기 한참 전부터 뉴욕의 연예계 정재계 유명인사 50명에게 '집들이나 생일 선물로 활용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제품을 보냅니다. 그러자 이들이 자연스럽게 이걸 주변에 선물하면서 브랜드가 알려집니다. 또 기자회견을 하는 대신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려서 며칠 동안 기자들을 1명씩 초대해 피부관리 서비스를 해주면서 제품과 향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뒤 조말론 런던은 미국 상류층이 선호하는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 입점했는데 그때 사람들한테 200개의 빈 쇼핑백을 나눠주면서 매장 근처를 계속 왔다 갔다 하게 시키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호기심을 북돋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매장 오픈 6개월도 안 돼서 100만 달러 한화로 11억 원의 매출을 달성합니다. 그러자 글로벌 대기업에서 에스티 로더에서 연락이 옵니다. 에스티로더는 자기 브랜드의 화장품뿐만 아니라 바비브라운 아베다 등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를 글로벌로 키워낸 코스메틱 그룹입니다. 조 말론은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조말론 런던을 에스티로더에 일부 매각하게 됩니다. 조말론 런던의 모든 직원이 함께 가고 매각 후에도 조말론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서 제품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4. 조말론의 위기 극복
이렇게 빠르게 사업으로 성장한 조에게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38살에 유방암이 발견됩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게다가 의사가 9개월 가량의 시한부 삶을 선고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못 보고 대학에 갈 때도 함께 있어주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아득하게 느껴진 그녀는 힘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았고 암과 싸워서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치료의 후유증으로 조는 후각을 잃게 됩니다. 이를 숨기고 회사에 복귀는 했지만, 전처럼 제품을 개발하거나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던 그녀는 결국 2006년 에스티 로더에 모든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후각은 돌아왔지만 이미 자기 이름을 건 회사에서는 나왔고, 5년 동안 향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향수와 관련된 일은커녕 백화점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이 시기에 조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자기 일에 관해서는 창의성도 잃고 희망도 잃은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과 카리브해에 있는 섬으로 여행을 갑니다. 아침마다 혼자 바닷가를 산책하던 그녀는 드디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됩니다. 혼자 해변을 걷고 있는데, 맑고 깨끗한 바닷속에서 가오리가 자꾸 따라왔습니다. 조가 걸음을 멈추면 가오리도 멈추고 또다시 걸어가면 가오리도 헤엄쳐서 따라왔습니다. 이 순간 조는 '창의성이라는 게 원래 내 안에 있던 게 아니라 관계에서 찾아오는 거구나. 그렇다면 내가 무언가를 컨트롤하려고 하지 말고 가오리가 나를 따라왔던 것처럼 나도 자연을 따라서 영감을 얻자.'라고 생각하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5. 두번째 브랜드 '조 러브스' 탄생
조말론은 그날 봤던 파란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그리고 레몬이 뿌려진 피지 워터를 닮은 향을 만들어냅니다. 새로운 향수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창작의 열망을 참지 못한 그녀는 2011년 겸업 금지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향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조를 위해서 또다시 가게를 구해줬습니다. 이 가게가 특별한 이유가 조가 16살 때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열쇠 가게였습니다. 조는 이 작은 가게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어느새 장성에서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새 브랜드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엄마가 향수를 사랑하고 향수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뜻의 '조 러브스'입니다. 50세에 이르러서 두 번째 브랜드를 오픈했는데 이번에는 조가 더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발휘합니다. 향수샵을 타파스바처럼 만든 겁니다. 타파스란 스페인의 작은 간식으로 술과 함께 곁들이는 한입 거리 간식인데 타파스 바에 가면 다들 높은 바에 일렬로 앉아서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시켜서 맛을 봅니다. 조 러브스의 타파스 바에 가면 향을 이렇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코스를 시키면 칵테일 쉐이커로 거품을 낸 바디워시를 술처럼 잔에 따라주고 또 바디 로션은 휘핑크림 기계로 디저트처럼 만들어서 제공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향을 극대화해서 맡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객이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만의 취향을 알아 가게 했습니다. 또 향수를 그래피티 스타일의 스프레이로 만들거나 붓으로 몸에 발라서 쓰는 페인트 브러시 같이 이색적인 제형으로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향수를 단지 뿌리는 게 아니라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러한 마케팅은 SNS에 입소문으로 이어졌고 조 러브스는 향수를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 조말론 런던에는 조말론이 없습니다. 하지만 2006년에 조말론이 떠난 후에도 조말론 런던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말론 런던은 여전히 조의 철학을 이어서 이미 만들어진 향료를 섞는 게 아니라 자연에 가까운 향을 찾아서 혁신적으로 향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조말론 런던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향수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조말론 런던의 창업주인 조말론은 향수가 언어이자 소통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올 가을 여러분은 어떤 향기로 말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