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위한 책가방을 처음 만든 브랜드 잔스포츠.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은 모두 알고 계실 텐데요. 요즘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떠오르고 있는 추억의 책가방 브랜드입니다. 하이킹 백을 만들던 잔스포츠가 학생들을 위한 책가방을 만들게 된 계기와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 평생 보증 서비스 등을 소개합니다.
1. 잔스포츠의 시작
1960년대 미국의 시애틀에 살고 있던 머레이 플레츠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알루미늄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제를 하게 됩니다. 머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 높은 산을 오르는 걸 좋아하는 아웃도어맨이었습니다. 기존에 메던 백팩의 프레임은 용접되어 나온 고정형이라 유연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불편했던 머레이는 자신의 신체에 맞게 조절이 가능한 배낭용 알루미늄 프레임을 만들기로 합니다. 그는 대학생 때 설계를 잘해서 알루미늄 제조사로부터 베스트 디자인 상도 수상했습니다. 머레이는 바로 특허를 취득하고, 취업 대신 배낭 사업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메레이는 알루미늄 프레임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지만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마침 그의 여자 친구 잔 루이스는 재봉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한 그녀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머레이가 "나와 결혼해 준다면 너의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만들게'라고 청혼을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하는 동시에 '잔스포츠'라는 회사를 만들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 하이킹 백 제작
처음에는 학생들을 위한 백팩이 아닌 등반가를 위한 전문 하이킹 백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판매를 맡기 위해 사촌인 스킵 요웰이 사업에 합류합니다. 하지만 대학을 막 졸업한 그들은 사업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머레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비소 2층에 자재를 갖다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하나씩 가방을 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회계를 봐주고, 일감이 많으면 동생들이 조립을 도와주고, 아버지는 중고 기계를 들여다 벤딩머신으로 개조하는 등 온 가족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창업을 시작한 세 사람은 모두 긴 머리에, 비틀스를 좋아하는 히피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백팩을 고안하면 바로 하이킹을 떠나 시험을 했고, 등반가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며 결점을 보완시켰습니다. 그 결과 시애틀의 등반용품점들에서 그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히말라야산맥으로 등반을 떠나는 시애틀의 등반가 론 피어를 위해 배낭을 디자인해 줬는데 꽃무늬 패턴이었습니다. 당시는 카키색, 벽돌색 등의 배낭이 일반적이었지만 잔스포츠의 컬러풀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은 매우 독보적이었습니다.
3. 학생들을 위한 책가방 제작
등산 매니아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성장하던 잔 스포츠가 의외로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연히 탄생한 것이 바로 학생들을 위한 최초의 백팩이었습니다. 어느 날 워싱턴 대학교에 있는 학교 서점에서 전화가 옵니다. 그 서점은 책 외에도 학생들이 찾는 테니스 라켓이나 학용품도 팔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잔 스포츠에서 나오는 스키용 배낭을 많이 찾는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는 시애틀에서 학생들이 책을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방에 넣는데, 가방에 힘이 없어서 많이 늘어지니 받침 같은 것을 넣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합니다. 전화를 받은 스킵 요웰은 버스 의자에 쓰던 비닐을 재활용하여 바닥을 평평하게 강화합니다. 기존의 백팩은 위에 덮개를 씌웠는데, 학생들이 가방은 빨리 여닫을 수 있도록 지퍼를 단 가방을 제작했습니다. 학생용 가방은 출시하자마자 시애틀에서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1980년대에는 초·중고생들까지 확산되면서 이때부터 학생들이 책가방을 등에 메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1960~1970년대까지는 사첼백이라고 불리는 가방을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데 이후부터 등에 가방을 메기 시작했고, 이렇게 잔스포츠가 가방의 문화를 바꾼 것입니다.
4.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
이들은 초기에 늘 사업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안 쓰고 아이디어로 승부합니다. 홍보도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했습니다. 보통 카탈로그는 제품 사진이나 전문 모델을 쓰는데 그들은 모두 자사 카탈로그의 모델로 등장합니다. 게다가 배경은 100년 전 서부 시대를 연출하기 위해 미국의 오래된 농장이나 골드러시 시절의 광산촌을 찾아갔습니다. 가죽 벨트에 포커를 치는 모습. 콧수염을 기르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때로는 원주민을 모델로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배경은 오래전 모습인데 가방은 잔스포츠를 메고 있는 모습들이 지금 봐도 멋있을 정도인데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또한 광고비를 줄이기 위해 제품 자체에 브랜드를 노출하기로 합니다. 로고를 빨간색으로 크게 만들어 가방 한가운데에 붙여 잘 보이도록 했는데 그게 오랫동안 잔스포츠의 시그니처가 됩니다. 무료로 매스컴 홍보를 하기 위해서 매년 잔스포츠와 거래하는 소매점의 사장님들을 초대해 함께 등반하거나 스키캠프를 열었습니다. 1972년부터 2006년까지 34년 동안 매년 캠프를 열어 입소문도 나도 언론에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모험을 계획한 그들은 기자들을 초대해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잔스포츠 가방 속에 토트백 하나를 숨겨놓는 마케팅도 했습니다. 가방을 샀을때는 몰랐지만 한참 뒤 여행을 준비하다가 비밀 공간에 토트백 하나가 더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깜짝선물에 놀랐고 이것이 입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자체 홍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있었던 그들의 비전은 '디스커버프리덤(Discover Freedom)’ 잔스포츠의 운영이 자유와 놀이 그 자체였습니다. 잔스포츠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 시도했고,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미국인 산악가를 지원하기 위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잔스포츠는 시애틀의 소상공인들에게 300달러에 야크를 판매했습니다. 야크는 히말라야 등반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야크는 고산지대의 얼어붙어 미끄러운 툰드라에서도 자기 몸의 5배인 짐을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사륜구동 지프보다 나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잔스포츠는 히말라야에서 찍어 온 야크 사진에 등반가 모두의 사인을 담아 벽에 걸 수 있게 액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잔스포츠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등반가들을 수없이 후원했습니다. 또 문제 청소년들에게 산행 경험을 시켜주는 비영리 프로그램 '대도시의 등반가들'이라는 지원했습니다. 또 유방암을 겪은 환우들이 등반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방암 퇴치 기금을 모금하는 등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후원했습니다.
5. 잔스포츠의 평생 보증서비스
잔스포츠 가방은 산에서 사용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튼튼하기로 유명했습니다.중.고등학교때부터 사용하던 가방이 대학원을 졸업할때까지도 망가지지 않았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방이 망가지면 잔스포츠에서 평생 무료로 수리를 해줬습니다. 백팩을 수리 보내면 바로 우편엽서가 온다고 합니다. "안녕? 나야, 네가 좋아하는 백팩. 여기 캠프는 정말 마음에 들어. 너랑 놀러 다닌 날들이 그리워. 빨리 보고 싶어. 빨리 수리받고 돌아갈게"라고 배낭을 의인화하여 엽서를 보냈고, 이렇게 잔스포츠는 평생 보증서비스에 흥미로운 마케팅 서비스를 추가했습니다.
한국은 1990년대 수입 물품이 개방되면서 본격적으로 잔스포츠가 수입되며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근에는 올림픽 선수들의 단복을 만들었던 무신사에서 잔 스포츠 수입을 전개하면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잔 스포츠가 초기의 모험 정신과 아이디어를 이어가면서 계속 학생들에게 사랑 받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