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에 시원한 에어컨은 여름 필수 아이템입니다. 뜨거운 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문명의 선물 '에어컨'을 처음 만든 윌리스 캐리어와 에어컨의 보급으로 이루어진 산업발달, 효율적인 에어컨 사용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창업자 윌리스 캐리어
캐리어는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1876년 태어난 윌리스 캐리어는 '이 세상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라는 생각을 가진 호기심 많은 문제 해결사로 성장합니다. 코넬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버팔로 포지컴퍼니에서 난방 시스템을 개선하는 업무를 맡습니다. 증기가 파이프를 통과할 때 얼마나 많은 열을 보유할 수 있는지 측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의 난방 시스템을 개선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고, 윌리스 덕분에 회사는 큰 비용 절감을 합니다. 이러한 업무 성과로 입사 1년 만에 윌리스는 개발팀장이 됩니다. 윌리스는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습니다. 이후 한 인쇄소에서 여름만 되면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은 탓에 인쇄 품질이 일관되지 않다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의뢰를 받게 됩니다. 공기 중에 있는 습도를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던 윌리스는 기차역 주변에 낀 안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액체인 냉매를 기체로 기화시켜 주변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고안해 에어컨을 발명합니다. 발명 당시 제품 이름은 에어컨이 아니었습니다. 윌리스는 1906년 '공기 취급 장비'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등록합니다. 이것이 현재 에어컨의 시초가 됩니다. 에어컨은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의 약자로 스튜어트 크레이머라는 공장 엔지니어가 습도와 환기를 조절하는 장치를 개발하면서 '에어컨디셔너'라고 이름 붙였고, 이후 일반 명사가 됩니다. 에어컨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줄임말입니다. 윌리스는 이후에도 원두공장, 목재공장 등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나가면서 연구를 발전해 나갔고, 처음 에어컨은 사람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는 산업을 위한 시설로 개발되었습니다. 이후 이슬점과 온도, 습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 논문은 공기 조화 시스템 설계의 기초가 되고, 수많은 기술 발전의 근거가 됩니다.
2. 에어컨의 보급으로 이루어진 산업의 발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버팔로 포지컴퍼니에서는 더 이상 에어컨을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군수물자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윌리스는 동료 엔지니어 7명과 함께 '캐리어 엔지니어링 컴퍼니'를 설립합니다. 캐리어는 냉장기, 산업용 에어컨, 민간용 에어컨까지 확대해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에는 백화점, 의회, 백악관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였고, 이렇게 탄생한 에어컨은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게 됩니다. 과거의 영화관은 여름철에 손님이 제일 없는 시기였습니다. 아무도 더운 여름에 땀을 흘리며 밀폐되고 어두운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 했습니다. 1925년 뉴욕의 티볼리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영화관으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영화 기획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작 영화를 여름에 개봉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써머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에어컨의 등장으로 여름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경쟁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에어컨의 발명은 영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일상을 바꾸었습니다. 에어컨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더 큽니다. 더운 지역에도 도시가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더운 남부 지방은 북부에 비해 공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주로 노예들에 의해 목화 농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에어컨이 탄생한 이후 미국 남부 썬벨트에 대도시가 들어오고 공업도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열대 해양성 기후인 싱가포르는 1년 내내 습도가 높고 연평균 기온이 27도입니다. 싱가포르의 전 총리 리콴유는 에어컨이 없었으면 싱가포르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현대 도시발달에 에어컨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어컨은 의료 산업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던 시기에 백신이 절대적인 온도를 유지하며 운송해야 했는데 냉방의 발달이 없었으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에어컨의 발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사병과 더위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더위가 생명을 위협하며 에어컨은 필수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윌리스 캐리어 생전에는 에어컨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에어컨 발명 초기에는 가격도 비쌌고, 대부분 산업용으로 사용한 데다가 수요도 많지 않았습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이 닥치자, 회사는 타격을 입고 다른 난방 회사와 합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에 에어컨은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사치품이었고 오랫동안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 윌리스 캐리어는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미국은 1950년대 경제 부흥기로 접어들며 에어컨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1955년 건설업에서 에어컨이 주택의 기본 사양으로 채택되면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스는 훗날 1985년이 되어서야 에어컨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의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최초의 에어컨 설치
우리나라에서는 경주의 석굴암에 최초로 에어컨이 설치됩니다. 선조들의 지혜로 과학적으로 설계된 석굴암을 일제강점기에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발라버립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결로 현상이 나타났고, 1960년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원 공사를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습도 조절을 위해 에어컨을 수입해서 설치하게 됩니다. 1960년대 범양상선이 일본에서 에어컨을 수입하며 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또, 1960년대 말 경원기계공업이 '센추리 에어컨'을 만들었습니다. 1968년에는 금성사가 국내 기술로 본격적으로 에어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캐리어는 대우중공업이 합작하여 '대우캐리어'로 국내 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1997년 대우 기업의 부도로 여러 기업을 거쳐 2011년 오택 캐리어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에서 에어컨은 1980년대에는 고급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1995년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이 0.13대였지만 2019년에는 0.97대로 급증합니다. 이는 한 가구당 에어컨이 한 대씩 보급된 수치입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적으로 3번째 높은 수치입니다. 요즘은 전 세계가 뜨거워지면서 지역에 관계없이 에어컨 보급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럽은 4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이어지자 2000년에는 10%에 불과했던 에어컨 보급률이 2023년에는 19%로 늘었고 앞으로 에어컨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4. 효율적인 에어컨 사용 방법
에어컨이 전력난과 기후변화에 주는 영향이 커지며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에어컨은 건물 에너지 소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전기 소비가 많습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에어컨 1대는 선풍기 20~30대만큼의 전기를 소비합니다. 기후 변화가 심화되며 에어컨 사용은 점점 늘어나고 전 세계는 전력난 문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사용되던 프레온 가스를 대신하여 사용 중인 대체 냉매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매우 높아 온실가스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냉매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효율성이 떨어지고, 초기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에어컨은 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대신, 남용하여 사용하면 지구를 다시 덥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적게,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국 에너지 공단은 실내 적정온도를 26도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에어컨은 26도로 설정 시 24도 보다 약 7%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에어컨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기술과 함께 사용 방식도 함께 모색해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