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가총액이 3조 5천억 달러를 돌파하여, 장중 한때 애플을 제치고 시총 순위 1위에 올랐던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입니다. 창사 이래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며 집요하게 GPU 반도체만 물고 늘어지다가 암호화폐 열풍과 AI 인공지능 발달로 급성장한 엔비디아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엔비디아(NVIDIA)의 탄생
엔비디아의 창업자는 바로 가죽 재킷의 사나이 젠슨 황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검은색 폴라티에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는 것처럼 젠슨 황의 시그니처는 검은색 가죽 재킷입니다. 그래서 검은 가죽 재킷 리더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963년생 젠슨 황은 대만 출신입니다. 그는 9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오리건 주립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됩니다. 졸업 후에는 AMD라는 회사에서 반도체 설계하는 일을 하다가 비즈니스를 창업하기로 결심합니다. 이게 바로 1993년 3명의 엔지니어 동료들과 만든 NVIDIA입니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저렴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모여 일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하나씩 시켜놓고 하루 종일 회의하고 노트북으로 일을 했습니다.
GeForce 출시
젠슨 황은 처음에는 PC에 들어가는 CPU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PC에서 데이터를 읽고 쓰고 계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중앙처리 장치가 CPU입니다. 젠슨 황이 처음에 회사 다닐 때 설계한 것도 CPU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CPU 시장은 인텔 천하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인텔이 누구에게나 기술을 열어주고, 오픈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CPU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텔 칩이 안 들어간 PC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인텔이 CPU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젠슨황은 하는 수 없이 조금 다른 기능을 가진 반도체 비디오 그래픽을 담당하는 칩을 출시하기로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래픽 처리장치 GPU(Graphics Processing Unit)였습니다. 창업을 했던 1990년대에 PC라는 건 대부분 사무 관련 처리에만 쓰였습니다. 그런데 젠슨 황은 '앞으로 컴퓨터가 보급이 되면 멀티미디어 기기로 쓰여서 이걸로 영상도 보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즐기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먼 미래를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1999년 엔비디아는 세계 최초의 GPU, GeForce 256을 출시했고, 시장에서 GPU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됩니다.
엔비디아의 위기
하지만 당시는 그래픽 게임 자체가 많지 않았고, 가격도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사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때 일본의 게임 기업 SEGA의 게임 콘솔 관련 계약을 따내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게임 회사들이 이 무명의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금도 확보하면서 숨통을 트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개발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젠슨 황은 자신들이 선택한 기술 표준이 잘못된 전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당시 기술의 중심은 마이크로소프트였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표준을 선택했고, 이미 다른 기업들은 MS의 새로운 표준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엔비디아가 이대로 SEGA의 게임 콘솔을 완성한다면, 기술은 뒤떨어지고 윈도우와 호환이 안 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젠슨 황은 SEGA의 CEO 나카야마 하야오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동안 엔비디아가 개발한 게 틀린 접근법입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파트너를 찾으셔야겠습니다. 엔비디아는 계약을 준수할 수도, 콘솔을 완성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엔비디아는 계약이 파기되면 파산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1년 동안 개발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젠슨 황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제품을 완성할 수는 없지만 돈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카야마는 납품은 받지 않았지만 약속한 비용을 지급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엔비디아는 6개월 동안 사업을 유지할 비용을 벌았고, 그 사이 사력을 다 해서 3D 칩을 개발했습니다.
GPU 시장 석권
제품을 출시했을때 시장이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나온 3D 게임들 언리얼, 페이크, 레인보우 식스 등을 엔비디아가 생생하게 구현하면서 점차 GPU로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CAD 같은 산업용 3D 제작을 위한 GPU도 선보였습니다. 인텔도 뒤늦게 GPU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엔비디아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GPU 시장의 일인자가 됐습니다. 사업이 승승장구했지만 이때도 젠슨 황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GPU는 컴퓨터 필수 장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임을 하는 사용자에게는 화려한 그래픽이 중요하지만, 수요가 제한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매출이 주저앉았고 엔비디아는 정말 어려움에 빠집니다. 이때 젠슨 황은 임원들의 연봉은 줄이고, 자신의 연봉은 1달러로 책정을 합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는 인재를 더 영입합니다. 그래서 위기일수록 이 젠슨 황의 리더십이 발휘되면서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버텨 왔습니다. 한편, 인텔이 독식하고 있던 CPU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CPU는 매년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여기에는 무어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기술 발전이 너무 빨라서 2년마다 트랜지스터 개수가 2배로 늘어난다는 가설이고요. 실제로 1970년대 이래로 인텔, AMD,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개발 속도가 거의 정확하게 무어의 법칙에 맞아떨어졌습니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2배씩 성능 향상을 해오던 CPU는 점차 성능 향상의 한계에 도달합니다.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어서 더 이상 발전을 하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 더 큰 변화가 도래했으니, 바로 2007년 아이폰의 등장입니다. 기존의 PC를 위해서 만든 CPU는 스마트폰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갈 칩은 더 작고, 가볍고, 발열도 적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텔이 만든 CPU는 너무 고성능이라 가성비도 안 나오고 무거웠습니다. 이때부터 아주 가벼운 모바일용 반도체 AP의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고, 반도체 시장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이 이제 다시 춘추전국시대처럼 이렇게 들어갑니다. 엔비디아는 초반에는 모바일 반도체 만들었지만, 순조롭지 않자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대신 자신들의 성능 좋은 GPU를 어디에 쓸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처음에 엔비디아가 그래픽 처리 장치 GPU라는 말을 직접 만들었는데, 그 말이 결국은 화면그래픽 성능에 한정한다는 느낌을 줘서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때 엔비디아는 GPU가 그래픽 전용이 아니고, 여러 가지 목적 제네럴포커스(general focus)로 쓰는 GPU라는 의미로 GPGPU라고 다시 이름을 붙입니다. CPU와 GPU의 차이 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CPU는 고성능 코어가 소량으로 배치되고, GPU는 낮은 성능의 코어가 수백에서 수천 개가 한 번에 일을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CPU가 전문 연구원 몇 명이라면, GPU는 생산 공정의 노동자 수천 명과 같습니다.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른 것입니다. 둘 중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순 연산이 반복되는 일에는 GPU가 성능이 더 좋습니다. 명령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병렬로 처리하기 때문에 더 빠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엔비디아는 GPU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서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암호 화폐 열풍과 AI 인공지능 발달로 급성장한 엔비디아
어느 날 엔비디아의 GPU 30년 외길 인생에 서서히 볕이 들기 시작합니다. 암호화폐는 채굴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채굴이라 수학 공식을 풀어서 그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과정입니다. 이 채굴이 요구하는 수학 기술이 반복적이고 무한한 단순 연산이기 때문에 CPU보다는 GPU가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2017년경부터 채굴하는 회사들이 GPU를 대량으로 장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엔비디아의 GPU, GeForce가 품절 현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GeForce가 들어간 노트북에 더 저렴해서, 노트북을 사서 GeForce만 떼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엔비디아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알파고가 쏘아 올린 인공지능 입니다. AI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방식도 단순 작업의 반복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이건 고양이, 이건 개 이런 것들을 무한반복 하는 겁니다. 이것도 CPU보다 GPU가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AI 인공지능 딥러닝의 아버지로 알려진 제프리 힌턴 교수는 2009년부터 엔비디아의 GPU를 써서 컴퓨터에 인간의 언어를 학습시키는 신경망 훈련을 시작합니다. 이때 힌턴 교수가 '천여 명의 동료 AI 학자들에게 당신들의 GPU를 쓰라고 홍보하고 있어요. 나에게 무료로 GPU를 하나 보내줄 수 있습니까?'라는 메일을 엔비디아에 보내옵니다. 왜냐하면, 학자들도 GPU를 구하기가 너무 비싸고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는데 엔비디아는 가차 없이 거절합니다. 이때만 해도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못 본 것입니다. 그런데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하고부터는 판도가 달라집니다. 이때부터는 엔비디아 GPU가 인공지능 개발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엔비디아도 태세를 전환해서 인공지능 학자들 서포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22년 더 큰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대규모 언어 모델 ChatGPT가 등장합니다. 초기에 ChatGPT를 훈련하는데 엔비디아의 GPU가 1만 개가 사용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신제품 GPT-4o가 공개되었는데 3만 개가 넘는 GPU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엔비디아의 GPU 공급이 부족한 나머지 ChatGPT를 만드는 오픈 AI의 CEO 샘 알트만은 7조 달러 즉, 9300억 원을 투자해서 AI 반도체를 직접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픈 AI가 단시간에 AI용 반도체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만큼 당분간 AI 반도체 헤게모니는 엔비디아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엔비디아의 주가는 3조 5천억 달러를 돌파하여 장중 한때 시총 1위 자리를 찍었습니다
그동안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불려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에 반도체는 먹고사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안보와 경제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지금의 기대를 업고 시장을 잘 이끌어 나갈지 우리도 계속 주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