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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 알리페이 즈푸바오 상용화

by 아이스 야쿠르트 2024. 10. 20.

주문한 걸 잊어버릴 즈음 도착하긴 하지만 가성비로 유명한 쇼핑몰. 그래서 안 해볼 수 없는 중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알리바바 이야기 준비했습니다. 마윈의 학창 시절과 알리바바의 창업 과정, 알리페이(즈푸바오)의 상용화와 중국 정부의 핀테크 규정 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리바바

 

마윈의 학창시절

알리바바의 창업주는 한때 중국 부자 1위에도 올랐던 기업인 바로 마윈입니다. 1964년생 마윈은 집안도 넉넉하지 못했고 외모도 출중하지 않고 공부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 마윈이 한 가지 자신 있는 게 바로 영어였습니다. 마윈은 영어로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틀리거나 비웃음을 당해도 꿋꿋이 밀어붙였습니다. 마윈이 자랐던 항저우라는 도시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었습니다. 마윈은 매일 자전거로 40분 걸리는 관광지 주변 호텔을 어슬렁거리면서 외국인이 보이면 말을 걸었습니다. 무료로 가이드를 자처한 것이었습니다. 이걸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9년 동안 했다고 합니다. 중학생이던 마윈은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받는 교육과 내가 받는 교육이 다르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게 외국인만 보면 달려가서 말을 걸 만큼 영어를 좋아하던 마윈. 그런데 수학 성적은 엉망이었습니다. 중국은 고등학교도 시험을 봐서 가는데 수학 성적 때문에 좋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입시험을 재수를 합니다. 가까스로 고등학교에는 입학을 했는데 대입에서도 수학이 문제였어요. 120점 만점에 19점으로 대학에 떨어 입시에 떨어진 마윈은 처음에는 공부를 포기합니다. 잡지사에 취직해서 책을 배달하는 일이나 비서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인생이라는 소설을 읽고 끊임없이 다시 꿈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교실로 돌아와 대입에 도전하는데 삼수까지 합니다. 삼수에 도전하던 해에 수학 선생님이 마윈은 대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거라고 비웃자, 자존심이 상해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 결과 당당히 항저우 사범대학교 영어교육과에 들어갑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인 만큼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고, 워낙 영어를 잘해서 성적도 좋았는데 학생회 회장까지 합니다. 게다가 1988년 졸업을 할 때는 친구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부임하는데 마윈은 500명의 졸업생 중 유일하게 대학 강사로 임용됩니다. 그래서 5년간 항저우 과학기술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하는데 수업이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게 아니라 자신감을 줬기 때문입니다. 젊은 나이에 대학에서 강사로 일한다는 게 굉장히 빵빵한 스펙이었지만, 마윈은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차립니다.

 

 

마윈의 첫 사업

마윈의 첫 번째 사업은 번역회사였습니다. 1990년 전후였던 이때만 해도 중국이 외국의 문을 많이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영어 통·번역 수요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저우에서는 첫 번째 번역회사로 차리게 되었지만, 사업이 잘 안 됐습니다. 이때 마윈은 항저우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이후에 찾아갑니다. 이후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시장처럼 중국 각지에서 생산된 잡화나 생활용품들이 한 곳에 모이는 곳입니다. 마윈은 이후에서 생필품을 떼다가 항저우에 와서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회사 초반에 월세도 내고 직원들 월급도 주며 버텼고, 다행히 번역회사는 조금씩 알려지고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1995년 미국의 한 투자회사가 항저우시의 고속도로에 투자를 약속했는데 1년이 지나도 돈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저우시는 미국에 돈을 받아올 사람을 보내기로 하고 통번역 회사인 마윈의 회사에 일을 맡깁니다. 덕분에 얼떨결에 마윈은 미국에 처음 발을 딛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 회사가 같이 중국 정부를 속여서 돈을 횡령하자는 제안합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이들은 마윈을 방에 가둬버립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마윈은 합작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단 풀려납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공항으로 온 마윈은 주머니에는 25센트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공항에서 슬롯머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25센트를 넣어서 600달러로 만듭니다. 뜻밖의 행운에 마윈은 그냥 중국으로 돌아가기가 억울하고 아쉬웠습니다. 그때 지인의 사위가 시애틀에서 인터넷 사업을 한다는 말이 생각이 난 마윈은 중국행 대신 시애틀행 비행기표를 사버립니다. 지인의 사위 회사에는 온통 젊은이들이 컴퓨터에 붙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그 사위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소개해 줍니다. 그러면서 검색창에 키워드를 치니까 원하는 내용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윈이 영어로 Beer라고 치니까 맥주와 관련된 온갖 정보가 나타납니다. 미국 맥주 일본 맥주 독일 맥주 그런데 중국 맥주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Chinese beer라고 치자 '데이터가 없습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중국어를 칠 수 있는 자판 시스템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마윈은 이 회사 직원들에게 자기네 번역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개발자들이 몇 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줍니다. 마윈 중국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회사를 세우기로 합니다. 자기네 번역회사 사이트처럼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고 운영해산 운영해 주는 회사를 차립니다. 그런데 마윈이 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거의 사기꾼 취급을 당합니다.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에도 인터넷이 깔리고 사업은 자연히 잘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기업이나 정보기관이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이 슬슬 잘 되기 시작하니까 여러 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당시 몸집이 15배가 큰 항저우 전신이라는 통신회사가 도메인도 비슷하게 만들고 자금력으로 압박을 해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윈은 항저우 전신과 합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급력이 많았던 항저우 전신은 마윈을 경영에서 번번이 소외시켰고, 마윈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알리바바1688의 창업

그리고 17명의 직원이 마윈을 따라나서서 다시 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1999년 설립한 이 회사가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마윈이 알리바바를 만들 때 3가지를 약속합니다. 첫째, 102년간 생존할 회사를 설립하는 것. 둘째, 중국의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는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하는 것. 셋째, 전 세계 1위의 전자상거래 회사를 만들어 세계 웹사이트 순위 10위 안에 들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중소기업을 돕는 온라인 커머스 사업이라고 한 부분입니다. 원래 알리바바는 아마존과 같이 고객들이 바로 살 수 있는 B2C 사이트가 아니고, 광저우나 심천에 있는 제조기업들이 자기 회사 제품을 알리는 사이트였습니다. 그래서 유통업자들이 구매하는 도매 사이트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알리바바닷컴은 주문 단위가 100개 또는 1 팔레트로 매우 크고 그만큼 매우 저렴합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수수료가 0원입니다.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는 목적이다 보니 지금도 비즈니스 모델은 수수료는 한 푼도 안 받고 먼저 노출해 줍니다.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물건을 모두 매입해서 배송까지 해주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플랫폼만 열어주고 제조기업들이 알아서 상품을 올리고 파는 형태입니다. 알리바바는 워낙 중국 초창기의 커머스를 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이걸 알아보고 투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희 회장입니다. 중국에 투자할 기업을 물색하던 손정희 회장 중국의 여러 창업자를 불러 모아서 투자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손정희는 모든 창업자에게 20분 안에 사업을 설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윈이 6분 정도 얘기했을 때 손정이는 마윈의 말을 끊고 투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가 필요하다고 물었는데 마윈은 자신은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미 골드만삭스에서 500만 달러를 투자받았기 때문입니다. 손정희는 그러면 왜 나를 찾아왔냐라고 물었고, 마윈은 누군가 그에게 손정희를 만나보기를 권해서 와본 것이라고 답합니다. 손정희는 3천만 달러 우리 돈 400억 원을 제시하면서 30%의 지분을 달라고 말했는데요. 마윈은 당시에는 원래 뜻대로 투자받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인 2004년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에 8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합니다. 그 결과 소프트뱅크는 34.4%의 지분을 확보해 7%를 가진 마윈보다 훨씬 많은 지분을 가졌고 오랫동안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리바바에 투자해서 올린 수익률이 3천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각각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가가 된 그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총알을 장전한 알리바바는 커머스 영역을 꽉 잡습니다. 중소기업 간의 거래를 돕는 사이트인 알리바바도 있지만, 지마켓이나 옥션처럼 누구나 입점해서 판매할 수 있는 오픈 마켓 타오바오도 있었습니다. 또 정품을 인증하고 좋은 제품을 입점시켜서 직접 운영하는 티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만들었는데 바로 알리 익스프레스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이트를 오픈해서 모두 잘 되는 바람에 중국 온라인 커머스 시장의 80%까지 알리바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알리바바는 이런 쇼핑몰 사업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알리페이(즈푸바오)의 상용화와 중국 정부의 핀테크 규제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할 때 이용하는 알리페이 서비스명 즈푸바오도 알리바바가 운영합니다. 우리나라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에 알리페이 큐알 코드 붙어있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인터넷 발전도 느렸지만, 신용카드 사용이 굉장히 낮았습니다. 온라인 커머스가 발전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결제 시스템도 같이 발달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들어오면서 이용자들은 알리페이만 있으면 현금이 하나도 없어도 붕어빵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엄청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결과 중국 최대의 빅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1999년에 창업한 이래로 20년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IT와 온라인 커머스의 대명사인 천하무적 알리바바에게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바로 마윈의 행방불명입니다. 알리바바는 결제 사업 부문인 앤트그룹만 따로 떼서 상장하려고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국 정부가 핀테크에 많은 규제를 합니다. 그러자 마윈은 2020년 상하이 금융 포럼에서 정부가 핀테크 스타트업에게 전통적 규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합니다. 이 발언은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동안 정부는 앤트그룹이 금융 파생 상품을 만들고 금융회사의 역할을 확장하려고 해 왔기 때문에 가뜩이나 벼르고 있었던 겁니다. 이 일로 마윈은 정부에 소환됩니다. 마윈이 2주간 공식 석상에서 안 보이면서 도주설, 가택연금설, 수감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게다가 CEO 후샤오밍은 돌연 퇴임했고, 앤트그룹의 상장은 무기한 연기 당합니다. 이를 계기로 마윈이 알리바바의 경영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시진핑 정부가 빅테크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알리바바의 성장세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마윈은 2년간 해외에서 주로 목격되면서 경영 활동에는 참여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홍콩의 대학교 객원 교수가 되는 등 밝은 모습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최근 마윈은 농업과 식품과 관련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마가네 주방'이라는 브랜드로 밀키트 사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 '이미바'라는 발효회사를 만들었는데 아이들의 키가 180센티미터까지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20년간 키워온 알리바바에서는 손을 댔지만, 이번에는 식품과 농업으로 눈을 돌린 마윈 앞으로도 어떤 사업을 우리에게 선보일지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