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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만년필, 최초의 만년필, 작가 에디션

by 아이스 야쿠르트 2024. 12. 14.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사각사각 쓰는 느낌의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분들이 꾸준히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만년필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 한화로 1조 3천억 규모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성장하고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소설 필사가 유행하고, 젊은 문구 덕후들이 만년필을 찾으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묵직한 만년필뿐만 아니라 파스텔톤의 가벼운 세필 만년필까지 다양하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18년째 만년필을 만들어 오고 있는 기업 몽블랑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몽블랑

 

최초의 만년필

만년필을 처음 개발한 회사는 미국의 워터맨이라는 브랜드입니다. 그전까지 인류는 오랫동안 필기구로 새 깃털을 썼습니다. 그래서 펜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 페나(pen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데 깃펜은 잉크를 계속 묻혀서 써야하기 때문에 잉크가 종이에 뚝뚝 흐르거나 잉크병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이후에는 잉크를 안에 가두는 펜도 나왔지만, 잉크의 양이 조절이 안 돼서 새기도 했습니다. 1884년 보험판매원이었던 루이스 에디슨 워터맨은 작은 사건을 경험합니다. 고객이 막 계약서에 서명하려던 순간 잉크가 쏟아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워터맨이 다시 계약서 갖고 오겠다고 했는데 고객이 '불길한 징조다'라고 하면서 계약하지 않고 가버립니다. 속상했던 워터맨은 일을 하면서 잉크를 저장시켜서 사용할 수 있는 펜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과학 현상인 모세관 현상을 펜에 적용합니다. 모세관 현상이란 액체가 좁은 관이나 틈을 따라서 천천히 밀려 나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서 잉크가 균일하게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잉크가 끊임없이 나온다고 해서 만년필에는 분수를 뜻하는 파운틴 펜(fountain pen)이라는 이름이 붙이게 되었습니다. 만년필은 순식간에 미국 필기구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일본에 수입되면서 만 년 동안 쓴다는 의미로 만년필이라는 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몽블랑 만년필의 탄생

그로부터 25년 후, 독일인 네헤미아스와 에버스타인은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워터맨이 만든 연필을 만년필을 처음 보게 됩니다. 획기적인 만년필을 보고 유럽에 빨리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사람은 독일로 돌아와서 투자자를 찾아 나서는데 이때 문구 유통업자 요하네스가 합류합니다. 세 사람이 1908년 작은 만년필 공방인 '심플로 펜 컴퍼니'를 세웁니다. 그리고 '루즈 앤 느와'라는 첫 번째 만년필을 출시하는데, 잉크가 새지 않는 장점 때문에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더 보완한 신제품을 개발해서 '몽블랑'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있는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만년필의 펜 꼭지에 마치 만년설이 쌓인 것처럼 흰색의 눈을 그려 넣습니다. 몽블랑의 눈 덮인 6개의 봉우리를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또 고급 만년필 라인에는 몽블랑의 높이 4810m를 따서 4810을 새겼습니다. 이후 회사 이름을 몽블랑으로 변경합니다. 1924년에는 몽블랑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명작 '마이스터스튁'을 선보입니다. 만년필의 펜촉 부분을 18k 골드를 사용해서 마모되지 않고 오랫동안 형태가 지속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년필 한 자루를 만드는데 여러 명의 장인이 6주 동안 무려 250가지의 공정을 거칩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만년필은 확실히 필기감이 다르고, 글을 쓰는 사람만의 하나뿐인 필체를 만들어 줍니다. 그 결과 몽블랑이 역사적인 순간에 여러 번 등장 합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임서에 서명할 때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했습니다. 1990년 동독과 서독의 총리가 통일을 조약 할 때도 독일의 몽블랑을 써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몽블랑으로 서명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의 역사를 결정짓는 순간에 언제나 몽블랑 만년필이 함께했습니다.

 

볼펜의 등장으로 찾아온 위기

1950년대에는 값싼 플라스틱 볼펜이 일반화되면서 만년필 시장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때 많은 회사가 사업을 접거나 다른 사업으로 전환했습니다. 몽블랑도 역시 볼펜과 연필을 제조하는 스웨덴 기업 '발로그라프'를 인수해서 볼펜뿐만 아니라 저가 만년필도 출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떨어지는 매출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외부 자본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영국의 알프레드 던힐은 몽블랑의 주주로 참여하고, 1985년에는 몽블랑을 완전히 인수합니다. 그 후 몽블랑을 럭셔리 명품으로 포지셔닝하기 시작합니다. 저가 모델은 생산을 중단하고 만년필 가격을 올렸습니다. 480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만년필이 1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최근 선보인 모델 만리장성 만년필은 무려 190만 달러로 가격은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경기가 다시 좋아지고 만년필 수요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만년필 업체가 다 없어진 덕분에 결국은 그동안 버텼던 몽블랑이 만년필 시상의 최종 승자가 되었고, 럭셔리 만년필 시장의 75%를 독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다 1997년에는 던힐이 스위스의 명품사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어 몽블랑은 까르띠에, 클로에 등의 명품 브랜드와 그룹이 됩니다. 인수된 다음에는 시계, 가방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합니다. 이때 고급 시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161년 된 시계회사 미네르바를 인수합니다. 미네르바는 시계가 작동하는 내부 장치인 무브먼트에서 뛰어난 기술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몽블랑은 현재 파리에서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방과 지갑을 만들고, 스위스 시계 공방에서 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만년필이 45%, 가죽 제품이 35%, 시계가 25%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가 에디션

명품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도 계속 선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작가 에디션 만년필을 선보입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가를 기리기 위해서 한정판 만년필을 만든 겁니다. 작가 에디션 만년필의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20세기 문학의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1992년 헤밍웨이를 기념하는 첫 번째 작가 에디션을 2만 개 한정 발매했는데 나오자마자 완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에디션 2호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였습니다. 그 밖에도 오스카 와일드, 도스토예프스키, 에드거 앨런 포 등 문학의 거장들을 제품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이렇게 작가를 기념해 온 몽블랑은 기업이나 자본가들이 더 많이 예술가를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 상'을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을 비롯한 20명이 이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자에게는 15,000유로의 상금과 함께 수상자의 이름을 딴 만년필을 출시했습니다.

 

그동안 몽블랑은 장인정신과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년필을 명품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람의 손길과 장인정신이 그만큼 더 소중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클래식의 가치가 더 높아집니다. 만년필이나 시계는 평생 쓰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집니다. 이런 게 바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몽블랑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요?